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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MTGOF

배덕감 이후, 쪽글

by 천수 2013. 12. 8.

  "네이슨."

  제 이름에 실린 습기가 문득 네이슨의 주의를 끌었다.

  "정말 나랑... 얘기 안 할 거야?"

  평이하게 말하려 애써도 다 느껴졌다. 피터는 울먹이고 있었다. 깜빡이며 눈물을 삼키고 있을 표정을 네이슨은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목을 조르는 손길에도 버텼건만 되려 비참해하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역시 세월의 무게 때문이었다. 때로는 아버지보다도 무서운 맏형이었으나 그럴 때조차도 아들마냥 어린 동생의 눈물은 그냥 넘기지 못했던 버릇이, 지금에까지 남아있었다.

  그 '지금'이 이런 지경만 아니었어도.

  묵묵히 앉아있는 네이슨에게 천자락이 쓸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일순 얼어붙은 몸에 내려앉은 것은, 그러나 주뼛거리는 손끝이었다. 며칠 새 여윈 손등을 조심스레 감싸쥐는 두 손에는 두려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다음 순간 손마디를 스친 숨결에 네이슨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뿌리치려는 기미로 알았는지 피터도 퍼뜩 멀어지는 듯했다. 서성거리던 체온은 이윽고 뭔가를 결심한 듯 좀 더 확실한 무게를 가지고 내려앉았다.

  손등에 피터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쏟아졌다.

  "잘못했어..."

  어린 짐승처럼 이마를 부비며 하는 말이었다. 비에 젖어 춥고 서러운 울음마냥 목소리는 가늘고 약했다.

  "형이 너무 힘들어해서... 난, 처음도 아니고, 형이라면 얼마든지... 그래서 그게 나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거부할 거라고는... 내가 잘못 생각했어. 다시는 이런 식으로 하지 않을게. 형이 정말 싫다면... 그래, 내가 참으면 되니까..."

  말이 사그라든 입술이 잠시 더운 숨을 고르더니 손등에 서툰 화인을 남겼다.

  "미안해, 형. 그러니까 제발... 뭐라고 말 좀 해. 그렇게 죽은 것처럼 있지 마..."

  네이슨은 웃고 싶다는 생각과 울고 싶다는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지금 피터를 받아들이면 지난 강제와 폭행에 여지를 남겨주는 꼴이란 걸 모르는 그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피터를 밀어낸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오랜 침묵이었다.

  네이슨은 피터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제 손을 빼내었다. 피터는 잠시 그를 붙잡았으나, 곧 놓아주었다. 체온에 익은 살갗이 공기에 식어지는 것을 느끼며 네이슨은 더듬더듬 손을 뻗었다. 오래지 않아 그 손은 동생의 머리에 내렸다.

  심판을 기다리듯 짧은 숨을 들이키는 피터를, 네이슨은, 약간의 서글픔마저 느끼며 쓰다듬어주었다.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이 멍청한 녀석아."

  "네이슨..."

  "널...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얀피터와 네이슨은 대충 이런 분위기겠지- 라고 상상하며 썰계에 끄적여보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