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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Petlar]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

by 천수 2013. 7. 6.

벽 속에 둘이 갇힌 2년 동안 피터와 가브리엘의 심경 및 위치 변화 망상.


근데 하필 이름이 가브리엘이라니 존나 네이밍센스 보소... '사일러' 할 땐 스릴러랑 어감 비슷해서 초강력한데 '가브리엘'하면 갑자기 애가 겁나 유약해지는 느낌. 그리고 성은 그레이=회색. 작가가 미친 게 틀림없다. 가브리엘[본디 가지고 있었던 약하고 여린 자아] + 사일러['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아상] + 그레이[둘 사이의 경계선]. 존나 이름에 클리셰를 때려부으셨네요.


아무튼 썰은 이러하다.


피터가 '사일러'를 찾아 꿈 속 도시로 들어온 시점은 이미 '가브리엘'이 세상에 자기 홀로 남았다고 믿으며 3년을 고독과 후회 속에서 보낸 후라는 게 중요.

가브리엘은 피터를 보자마자 혼란스러우면서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나도 안도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동시에 지난 3년 내내 곱씹었던 회한이 피터에게 집중된다. 그에게 저질렀던 많은 잘못들, 자신이 세상에 저질렀던 죄악들. 이 세상에 자신 외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사람인 피터는 그 순간 가브리엘에게 있어 속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인류를 대표하는 대상이 된다. 이미 이곳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가브리엘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피터에게 용서를 빌고 또 받고 싶다는 감정에 집중한다.

반면 피터는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에게 이곳은 단지 '능력자 사일러'가 있어서 들어온 곳일 뿐이다. 그는 사일러가 여전히 증오스럽고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가브리엘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사일러라는 존재는 세상과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일 뿐, 용서할 생각도 의지도 아직 없다. 그래서 피터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사일러를 깨워서 그의 협조를 얻어낼 것인가 라는 목적에 집중한다.

목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 대처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가브리엘은 피터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릴까봐 늘 불안하고 또 어떻게 하면 피터에게 속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늘 피터의 눈치를 본다. 이곳에서는 가브리엘의 유일한 삶의 의미가 피터이기 때문에. 그는 피터에게 제발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호소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리는 처지라 적극적으로 어필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한시가 급한 마당에 자꾸만 감정적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가브리엘'의 태도는 피터에게는 초조감과 애써 참고 있는 울분을 자극하는 가시와도 같다. 그에게 있어 이 세상에 '사일러'가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단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자기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고 싶기 때문인데, 이미 스스로 비참해져있는 '가브리엘'의 모습은 그 의욕을 꺾고 가증스러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엇갈릴수록 피터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가브리엘은 점점 더 움츠러든다.

그러다 결국 둘이 충돌한다. 피터도 답답하고 가브리엘도 답답하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피터가 믿어주지도,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아서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