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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앞뒤없이 사일러를 울려보고 싶어서 끄적이는 썰

by 천수 2014. 2. 22.

  BNW 이후 피터와 가브리엘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임.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기들만의 5년을 통해 쌓인 미운정 고운정을 다 합쳐서 둘은 친구 혹은 형제 혹은 연인처럼 거리낌없는 모습으로 피터의 아파트에서 함께 지냄. 처음에는 사일러가 피터에게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의심하던 사람들도 피터가 태연하게 행동하고 가브리엘이 새사람이 되겠다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다보니 어느새 좀 찜찜하긴 해도 그럭저럭 봐주는 수준이 됨.

  그렇게 계속 잘 지낼 줄 알았음. 특히, 둘 사이에 일어난 일과 가브리엘의 마음이 진실/진심이라는 걸 읽어낸 파크만은 이제 능력이나 사일러나 다 지긋지긋하기도 해서 에라 난 모르겠다 둘에게 신경 끄고 자기 가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음.

  그런데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일이 있어서 혼자 집에 들어오는데, 아내랑 아이가 친정에 가서 비어 있어야 할 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짐. 바짝 긴장해서 텔레파시로 생각을 읽어봤더니 맙소사 사일러임. 파크만은 이 새끼가 오래 참더니 결국 제 버릇 못 버렸구나 싶어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데, 근데 가만히 들어보니 들리는 소리가 이상함. 생각에 두서가 없이 혼란스럽고 감정도 뒤죽박죽인 것이 마치 뭔가에 쫓겨서 잔뜩 겁에 질린 사람 같음. 

  이게 무슨 일이냐 싶어서 더듬어 따라가보니 생각이 아니라 생소리로 흐느끼는 소리가 나는데 오 마이 갓 그게 지하실임. 설마 하면서 내려갔는데 자기가 묻어버리려고 했던 그 벽 앞에서 진짜로 가브리엘이 서럽게 울고 있음. 옷장에 숨어서 우는 어린애 마냥 무릎을 안고 고개는 처박고 끅끅 소리를 삼키면서 어깨가 들썩들썩하는데, 애처롭고 처량하고 다 떠나서 파크만한테는 너무 비현실적인 모습인 거. 

  순간 넋이 나갔다가 간신히 정신 차리고 너 여기서 뭐하냐고 소리치니까 움찔하고 쭈뼛쭈뼛 고개를 드는데 얼굴이 아주 가관임.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붓고 상기되고 눈물 범벅인데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함. 그 꼴을 해놓고 멍청하게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파크만을 올려다보다가 겨우 정줄을 잡았는지 완전 코먹은 소리로 '파크만...' 하고 기어들어가듯이 이름을 부름. 슬슬 현실감도 돌아오고 짜증도 나는 파크만은 내 집에서 뭐하는 거냐고 다시 다그쳐 묻는데, 세상에 정줄 잡은 줄 알았던 애가 그 말에 또 움찔하고는 눈을 깜빡깜빡 하더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주르륵 눈물을 떨구는 거. 본격_사일러_우는_현장.avi 을 보고 파크만은 턱이 떨어지고 가브리엘은 계속 눈물 훔치면서 뭔가 변명을 하려는 듯이 웅얼웅얼하기는 하는데 "그게, 사실 여기 오려던 게 아닌데, 근데, 모르겠어, 생각이 안 나서, 난 그냥, 그러니까, 내 말은..." 하다가 결국은 "흐어엉..." 이 되어버림. 

  눈으로 보나 머릿속으로 읽어보나 애가 제정신이 아닌 거 같으니 이러다 진짜 무슨 일 나겠다 싶어서, 파크만은 일단 가브리엘을 위층으로 데려감. 소파에 앉혀놓고,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면서 우유를 데워주고 별로 내키진 않지만 어깨도 토닥이며 살살 달래니 좀 진정이 되는지 점점 울음이 잦아듬. 

뜨거운 우유 한 잔을 다 마시고 뚝뚝 돋던 눈물이 벌겋게 부어서 쓰린 눈가에 흔적으로 남은 뒤에야, 사일러는 마침내 코맹맹한 소리로 훌쩍거리며 입을 뗌.

"...미안해."

"됐고, 왜 왔는지나 말해봐. 미리 말해두는데 네놈 우는 소리 듣느라고 내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거든? 시덥잖은 소리 하면 네놈 머릿속을 바닥까지 긁어낼 거야"

"......갈 데가 없었어."

"왜, 피터가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디?"

"......"

"......진짜냐?"

"아니야!" 자기도 모르게 소리 높였다가 지레 움찔해서 달아나는 눈빛. "피터는... 피터는 아무 말 안 했어."

"그럼? 안젤라? 노아? 클레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제 와서 그 사람들한테 이렇게 쫓겨올 이유는 없을 테고. 대체 뭐 때문에?"

"......."

사일러는 간신히 떼었던 입을 도로 붙여버림. 파크만은 슬슬 답답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함. 형사가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는 사람의 심문 본능이 슬슬 목 뒤로 치밀어오르고 있음. 자신의 말을 실천해서 저놈의 머릿속을 한 번 들쑤셔봐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사일러가 한 마디를 던짐.

"나, 당분간 여기서 지내면 안 될까?"







그래서 넌 대체 왜 온거냐...?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