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썰.
_범법 능력자의 흔적을 쫓던 피터와 가브리엘은 어느 부둣가 창고에서 함정에 빠진다. 기습을 당해 정신을 잃어버린 피터는 깨어났을 때 제 옆에서 사지가 토막난, 심지어 머리가 열려 뇌가 드러난 가브리엘과 그 옆에 피로 쓰인 '사일러'라는 글씨를 발견한다.
_급한대로 토막들을 수습해 이어붙이자 가브리엘의 몸은 느리게나마 재생을 시작한다. 허나 병원으로 옮겨지고, 몸의 재생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혼수상태. 그리고 밖에서는 '사일러'를 모방하는 잔인하고 기괴한 토막살인이 이어진다. 컴퍼니는 가브리엘이 모방범의 얼굴을 보았으리라고 생각하고 그를 깨울 방법을 찾는다.
_한달 가량을 기다려 마침내 가브리엘이 깨어난다. 그러나 뇌에 가해진 충격 때문인지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유일한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파크만이 찾아오지만 무리하게 텔레파시를 시도하다가 가브리엘이 불안증세를 보여 그만둔다.
_타개책을 주는 것은 안젤라. 컴퍼니의 전 협력자였던 하멜 노먼이라는 연구자를 알려준다. 노아, 피터, 가브리엘이 찾아가자 그는 가브리엘의 능력과 '사일러'로서의 전적에 흥미를 보인다. 두뇌 활동, 신체 반응, 심리 검사 등 다방면으로 진단한 결과 재생 덕에 뇌 기능 자체는 이상이 없고 기억상실은 교통사고 후유증 같은 쇼크 반응이니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능력도 서서히 돌아올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다만 그 서서히가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
_빠르게 회복하려면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고 해서 당연하게도 피터가 가브리엘을 돌보게 된다. 그런데 함께 지내보니 지금의 가브리엘은 이전에 알던, 사일러였던 가브리엘과도 다르다. 사람의 관심을 원하고 종종 유치하기까지 한 허세를 부리고 감정의 기복이 커서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었던 이전의 가브리엘이 동물이라면, 있는 듯 없는 듯하고 필요한 일이 아니면 먼저 표현하지도 않고 대개의 경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속내 자체를 읽을 수 없는 지금의 가브리엘은 식물 같다.
_말로만 들었던 "사일러 이전의 가브리엘"을 직접 보고 있으니 피터는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자기가 알던 그와 눈 앞에 있는 그를 계속 비교하게 되고, 그가 잊어버린 지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일러 이전의 그의 삶. 사일러로서 그의 삶. 그리고 자신과 함께 했던 시간. 분명한 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브리엘 그레이는 항상 불안정했다는 것. 그런데 그 전부를 잊어버린 지금이 오히려 평온해보인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헌데 생각해보니 피터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르네가 자신의 기억을 지웠던 그 때에 케이틀린과 함께 했던 자신은 더 자유로웠고- 더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_어느 날 피터는 가브리엘에게 묻는다. "뭐 생각나는 거 있어?" 가브리엘은 물끄러미 피터를 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Nothing." 그리고 조금 뒤 덧붙인다. "미안해."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