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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MTGOF

피터→네이슨으로 앵슷한 꿈을 꾸었다

by 천수 2013. 10. 23.

내 최대의 재능낭비는 꿈으로 썰을 푸는 게 아닐까...

막상 정리해놓고 보니 Chasing Car 가사가 더 어울리는 거 같긴 한데.


"The final word in the final sentence you ever uttered to me was love"

- Make This Go On Forever by Snow Patrol



#1

  피터가 얀데레화해서 네이슨을 감금함. 심지어 가브리엘을 죽여서 그 능력을 전부 뺏어가지고는 네이슨을 가둬놓는데 이용함.

  처음엔 작은 골방 같은 곳에 족쇄 채워서 가둬놓음. 피터가 올 때마다 네이슨은 끈질기게 설득하고 피터의 마음을 돌리려고 함. 그러나 피터는 듣지 않음. 사랑한다며, 형을 지키려는 거라며 일방적인 감정과 이해를 강요할 뿐임. 

  안되겠다 싶어서 네이슨은 탈출하려고 함. 그런데 밖으로 나온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피터가 서 있음.

  "예상은 했지만, 형. 정말 묶는 정도로는 안되겠구나."

  "이러지 마, 정신 차려 피터.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주 잘 알아, 네이슨.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는 거지. 형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이 네이슨이 마지막으로 본 것. 


#2

  정신을 차렸을 때 네이슨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음. 아서가 안젤라한테 했듯이 피터가 텔레파시로 암시를 걸어서 시력을 막아버린 것. 네이슨은 설마 피터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충격에 빠짐.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필사적으로 알아보려고 하지만 알듯 말듯 잡히진 않음. 단지 피터가 자기에게 형제 이상의 관계를 원하고 그걸 강제하고 있다는 것만이 그가 지금 분명하게 아는 사실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미워하고 원망하는 듯한 행동을 하니 대체 진의가 뭘까 혼란스럽지만 눈이 멀어버린 데다가 신변이 구속되어 있으니 어떻게 할 방도가 없음.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거야?"

  "말했잖아, 네이슨. 난 형을 원해. 형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길 바라. 그것 뿐이야."

  마치 연인을 대하듯이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피터는 조용히 덧붙임. "늘 말하는데... 아직도 그런 걸 물어보는 걸 보니 내 말 안 듣는구나, 형."

  네이슨은 이를 악뭄. "너무 잘 들어서 문제인 거야. 항상 말로는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네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날 미워한다고 외치고 있어. 대체 어느 쪽이 네 진심인 거야?"

  "그런 거 따질 필요 없어. 형은 그냥 날 받아들이면 돼.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그거면 돼."

  대화를 거듭하면 할수록 확인하는 것은 피터가 자기를 순순히 내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 뿐임. 심지어 눈을 가린 뒤로는 방이 작으면 구조를 외우기 쉽다면서 아예 큰 집으로 옮김. 매일 네이슨은 피터가 없는 동안 더듬더듬거리며 집의 구조를 외우고 탈출로를 찾으려고 하지만 피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오늘은 좀 많이 건드렸네?" 하면서 주기적으로 물건 배치를 바꿔버림.


#3

  그렇게 얼마인지도 모르고 날이 지나가니 네이슨도 점점 지침. 결국 탈출로를 찾기 전에 피터를 파악하고 설득하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인정함. 그래서 그때부터는 막 헤매고 다니기보다는 피터의 반응을 살피고 그 저의를 추리하는데 집중함. 탈출 시도는 계속 하지만 그것도 정말 탈출구를 찾기보다는 피터의 반응을 살피려는 쪽으로 목적이 바뀜.

  관찰에 분석을 거듭하다보니 마침내 한 가지 실마리가 잡힘. 피터는 네이슨을 그냥 놓아두면 분명 자기에게서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 마치 새가 날개가 있으니 날아갈 거라고 믿는 것처럼 네이슨이 자기를 버리고 가버릴 거라는 까닭 모를 믿음이 뿌리깊게 박혀 있음. 두려움이기도 한데 어떤 때는 네이슨이 이미 피터를 버린 적이 있다는 듯 원망으로 표현되기도 함.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계기가 네이슨이 창문에서 떨어졌을 때. 네이슨이 갇힌 방은 2층인데 어느 날 피터가 빼먹었는지 창문이 고장났는지 네이슨이 더듬더듬하다가 잘못 기대서 창밖으로 창문과 함께 떨어져버림. 타박상 찰과상에 유리조각에 베이고 해서 겉보기엔 심해보이지만 목숨에 지장은 없었음. 그런데 피터가 식겁해서 달려와서는 괜찮냐고 살펴보다가 갑자기 벌컥 화를 냄.

  "대체 창문은 왜 건드린 거야? 이렇게 뛰어내리려고? 그래서 죽어버리려고? 그렇게까지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어?"

  능력에다 시각까지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여태까지 뭘 해도 여유롭던 애가 그 한 순간에 이성을 잃고 네이슨을 다그침. 네이슨이 난 창문이 이렇게 무방비하게 열려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하니 그제야 진정하고는 안으로 데려가서 치료해줌. 그리고 한참을 말이 없어서 네이슨을 불안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온몸으로 네이슨을 끌어안음. 떨어지면 사라질까 두렵다는 듯이.

  "내가 잘못했어. 이제 무작정 가둬두지 않을게. 답답하면 말만 해. 어디든 데려다줄게. 필요하다면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 가지 마. 날 버리고 가지 마, 형."

  이 일로 네이슨은 피터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하는 동시에 내가 뭘 어쨌다고 이렇게 절박하게 매달리는지 새로운 의문을 얻음. 그리고 이 문제가 어쩌면 자기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곪아온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림. 


#4

  그때부터 자기와 피터의 과거를 더듬기 시작.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떠오르는 것들은 자기가 피터의 믿음에 못 미치거나 배신했던 일들. 빌딩26, 파인허스트, 뉴욕폭발계획.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피터와 그 진의를 외면하고 자살시도로 발표했던 자신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네이슨은 그동안 피터가 얼마나 외롭고 상처받았을지 자기는 신경도 안 썼다는 걸 깨닫고 후회, 미안함, 연민 등등으로 마음이 복잡해짐. 피터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피터에게 그런 관심과 배려를 돌려줘야 했던 자신 같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그래서 어느 날 피터한테 물어봄. "네가 본 미래에서 내가 널 버렸니?"

  피터가 완전히 굳어서 "왜 그런 걸 물어봐? 전에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전에 안 물어봤으니까 묻는 거야. 지금이라도 알아야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를 이해한다고?"

  "당연히 해줬어야 하는데 외면하고 있었던 일이야.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돌이키고 싶다. 내 어떤 행동이 너를 이렇게 몰아붙인 건지 알려줘."

  피터는 한참 말이 없고 네이슨은 피터 표정을 보고 싶은데 눈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다. 그런데 갑자기 피터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낸다.

  "버렸냐고, 나를? 무섭게 했냐고? 아니, 더 나빠. 제일 나쁜 짓을 했지. 형. 형은 말이야... 아무것도 안 했어. 아무것도. 그냥... 죽어버렸어."

  네이슨은 얼어붙음. 피터는 계속 그 이상한 소리를 내며 중얼거림. "난 단지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야. 옳은 일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라고. 그게 오만이었다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았을 텐데. 그런데... 왜 계속 형이 죽는 걸까. 내가 그렇게 애원했는데도 형은 죽어버렸어. 왜? 우리가 함께라면 죽음이라도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형은 날 두고 가버리는 거지? 대체 왜?"

  억눌렀던 게 터져버린 것처럼 피터는 이제까지 네이슨을 잃을 뻔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오열함. 네이슨은 그 절망의 깊이에 아연실색함.

  자기가 알지 못했던 미래까지도 피터는 몇번이나 보고 왔고 그 미래에서 자신은 몇 번이나 죽었다 함. 현재에서도 자기가 죽음을 생각지 않았을 때에도, 또는 죽음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피터는 늘 네이슨의 죽음과 상실을 두려워하고 있었음. 피터를 구한다거나 세상을 구한다거나 어떤 의미로 포장을 해도 그건 자기만족일 뿐 피터에게는 똑같이 '형을 잃는다' 라는 의미밖에 안 된다는 걸 네이슨은 미처 생각지 않았음. 결국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네이슨이 죽을 뻔했던 모든 상황과 태도는 피터에게는 '형이 나를 두고 떠난다'로 받아들여진 것.

  "그래서 그만뒀어. 백날 세상을 구해봤자 세상은 한 번도 형을 내 곁에 남겨두지 않았어. 형은 계속 떠나버렸고, 나는 늘 외톨이가 되어버렸어. 그런 건 이제 싫어."

   


#5

  피터의 고백을 들은 후 네이슨은 피터가 세상을 구한다고 목숨을 걸었을 때 자신의 마음이 저와 다르지 않았음을 떠올림. 그런데 피터가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나갔던 것도 또 자신이 그를 진작 지지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도 떠올림. 결국 모든 게 자기 때문이었던 것처럼만 느껴져서 네이슨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음.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사흘이 침묵속에서 지나감. 피터는 모든 것을 토해낸 후 도망치듯이 나가버리고 숨어버린 것처럼 돌아오질 않음. 새장 같은 방에 남겨진 네이슨은 피터가 했던 말과 행동을 곱씹고 곱씹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뇌함.

  주여, 답해주소서.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당신의 어린 양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저 아이를 구해주소서. 저 아이를 구할 힘을 내려주소서.

  그렇게 피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닷새 째. 네이슨은 마음 속에서 어떤 결심이 서는 것을 느낌.


#6

  여섯번째 날이 시작되는 밤, 피터는 소리도 없이 집으로 들어옴. 방문을 잠그지 않았으니 네이슨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겠지만 후천적 장님이 닷새를 혼자 지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므로 조금 불안함.

  그리고 피터를 맞이한 것은 눈이 보이지 않으니 필요조차 없는 작은 불빛 하나를 켜고 방에 앉아있는 네이슨.

  "왜 불을 켜고 있어?"

  "이렇게 해두면 네가 올 것 같아서."

  "...나를 기다렸어?" 

  "그래."

  "왜?" 

  "할 말이 있어서."

  "해봐." 

  "여러가지 생각해봤는데. 역시 이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눈을 돌려주면 좋겠어."

  "......" 

  "...대신 다리를 가져가도 좋아."

  "뭐?"

  "닷새 동안, 너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어. 네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그런데 계속 어딘가에서 막히는 거야. 왜 그런지 생각해봤는데,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짐작이 안 가더라고. 아무래도 네 얼굴을 잊어버린 것 같아."

  "......그래서, 내 얼굴을 보겠다고 다리를 포기하시겠다?"

  "아니면 다리는 내버려두고, 네가 있을 때만이라도."

  "...왜 보고 싶은데, 내 얼굴 같은 게."

  "......"

  "그냥 그대로 잊어버리면 되잖아."

  "그게 싫으니까 그렇지."

  "왜? 형한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잖아. 내가 미울 거 아냐. 얼굴 보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거야?"

  "어쩌면."

  "......"

  "...사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뭐가 됐든, 네 눈을 봐야만 결심이 설 것 같아."

  네이슨이 앉아있는 의자 앞에 와서 피터가 무릎을 꿇는다. 네이슨은 먼저 자신의 무릎에 와닿는 체온을 느끼고, 그 뒤에 눈 위를 덮는 손길을 느낀다. "좀 아플 수도 있어." 그 뒤 굉장히 눈부실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통증. 아주 천천히, 네이슨은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이 걷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가장 처음 보는 것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하듯이 네이슨의 무릎에 몸을 기대어 그를 올려다보는 피터. 아주 아주 오랜만에 보기 때문에 처음 보는 것처럼 새삼스럽지만 사실 늘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아주 익숙한 표정으로.

  울음을 감추는 표정으로 피터가 재촉한다. "자. 봐. 그리고 말해봐. 얼마나 대단한 결심을 하려는 건지."

  네이슨은 오랫동안 피터의 눈을 들여다본다. 단 한 번뿐인 기회인 것처럼. 피터도 정말 오랜만에 자신을 똑바로 담는 눈을 본다.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마침내 네이슨은 피터의 이마를 쓸어주고 입을 맞춰준다. "고맙다. 아직 날 버리지 않아줘서."

  피터가 눈을 크게 뜬다. "뭐라고 했어?"

  피터보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이 네이슨은 눈을 감는다. "항상 그랬지. 내가 널 이용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성급하게 화를 낼 때도, 너는 날 배신하지 않았어. 내가 준 상처를 원망하면서도, 늘 다시 돌아왔어."

  "......"

  "전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어. 계속 기회를 주는 네가 순진하다고만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 쉽게 잊는 건 네가 아니라 나였고, 내가 받은 건 용서가 아니라 인내였다는 걸."

  "......"

  "...그러니, 만약 이게 네가 주는 마지막 기회라면, 이제야말로 잡아야만 하겠지. 내가 정말 장님이 아닌 이상은."

  피터가 튕기듯이 일어선다. 그 표정이 변하는 것을 네이슨은 똑똑히 본다. 경악과 불신과 미약한 기대.

  "무슨 뜻이야."

  "여기 있겠다는 말이야. 너와 함께."

  "......"

  "세상을 구하든, 세상을 버리든. 새로운 삶이든 죽음이든. 네가 그걸 원한다면, 내가 옆에 있을게. 다시는 널 버려두고 떠나지 않을게."

  "...그만해. 입발린 말로 모면하려고 하지 마. 그래봤자 형을 풀어주진 않을 거야."

  "그러면, 네가 내 옆에 있겠지."

  "......"

  "...믿든 안 믿든, 난 남아있을 거야. 네가 믿어주기를 기다리면서."

  "그게 언제까지 갈까..."

  "네가 날 용서해줄 때까지.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 될 때까지."

  긴 침묵. "...형은 나를 용서해?"

  "미워한 적 없어."

  피터가 눈물을 쏟는다.


#7

  Make this go on forever...